혁명일화
백두산의 아들
백두산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1942년-2011년)의 고향이다.
조선민족의 조종의 산, 조선혁명의 성산으로 불리우는 백두산은 조선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서 지형이 험준한데다가 날씨가 거칠어 태고적부터 사람이 살아본적이 없는 무인지경이였다. 이 태고연한 원시림속에 《첫 거주자》들이 나타난것은 조선이 일본의 군사적강점(1905년-1945년)하에 있던 1930년대후반기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밑에 중국의 만주광야를 무대로 치렬하게 벌어지던 항일무장투쟁의 령도적거점이 백두산으로 옮겨짐에 따라 이 산의 소백수골짜기에 귀틀집으로 지은 밀영들이 꾸려지고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가 자리잡게 되였다.
그리하여 높은 산들과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이고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소백수를 옆에 낀 이 이름없는 밀영지에 다른 귀틀집들보다 좀 작고 문에 노루발쪽으로 손잡이를 해단 귀틀집 한채가 생겨나게 되였다.
바로 이 자그마한 귀틀집에서 후날 세계정치사에 지울수 없는 흔적을 남긴 김정일동지께서 백두산의 정기를 안고 탄생하시였다. 그날은 1942년 2월 16일이였다.
빨찌산의 아들로 태여나 포연에 절은 옷을 입고 군대밥을 자시며 돌격구령소리와 함께 성장하신 그이의 인생은 첫 시기부터 남다른것이였다.
처음으로 그이의 눈에 비쳐진것은 군복입은 어머님의 모습이였고 유년시절에는 늘 빨찌산대원들과 함께 지내시며 자라시였다. 그이께서 뛰노시던 고향집뜨락은 험준한 백두령봉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이의 남다른 탄생과 성장을 감회깊이 추억하시면서 회고록에 김정일동지를 백두산의 아들이라고 하는것은 항일혁명의 산아라는 뜻이며 민족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는 항일혁명투사들의 품에서 인생의 첫걸음을 떼고 그 품에서 조선혁명의 향도성으로 솟아오른 조선의 아들이라고 쓰시였다.
김일성동지의 령도아래 해방(1945. 8. 15.)후 락후와 빈궁, 식민지적잔재밖에 없는 터전에서 민주의 새 나라가 일떠서던 나날, 1950년-1953년의 조선전쟁시기 최고사령부작전대곁에서 제국주의련합세력을 타승하던 신묘한 전법을 눈에 익히시던 나날, 전후 재더미를 헤치고 수많은 공장들과 아름다운 거리들이 새로 서던 건설의 나날들을 체험하시면서 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석의 위업을 이어 조선을 책임지고 찬란한 미래에로 이끌어가실 웅지를 간직하시였다. 그이께서 1960년대초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하시면서 지으신 시 《조선아 너를 빛내리》는 그이의 뜻이 얼마나 원대한가를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1964년 6월이래 반세기가 넘는 장구한 기간은 그이의 웅지가 그대로 실현되여온 나날이였다.
그이께서는 김일성동지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을 심화발전시키시여 조선인민과 자주시대의 지도사상으로 되게 하시였으며 그것을 조선사회에 철저히 구현하시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일심단결의 나라, 강위력한 사회주의국가로 건설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조선에 《20세기 문예부흥》이라고 일컫는 문학예술의 대전성기를 펼치시였고 세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많은 창조물들을 일떠세우시여 건설의 대번영기를 안아오시였다.
지난 세기말엽 여러 사회주의나라들의 붕괴와 그를 기화로 한 제국주의련합세력의 극단적인 경제봉쇄와 련이은 자연재해 등으로 조선은 류례없는 경제적난관과 시련을 겪게 되였다.
남들같으면 열백번도 더 쓰러졌을 준엄한 그 시기 김정일동지께서는 늘 인민들과 군인들속에 계시였다.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에서 그들과 고락을 나누시며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시였다.
그이께서 펼치신 독창적인 선군정치에 의하여 조선은 그 어떤 대적도 감히 건드릴수 없는 최상의 공격수단, 방어수단과 함께 전쟁억제력까지 갖춘 군사강국으로 솟구쳤으며 조선식사회주의는 굳건히 수호되고 시련을 역전시켜 사회주의강국건설의 튼튼한 도약대까지 마련하였다.
자주적이고 평화적이며 친선적인 김정일동지의 대외정책은 실천을 통하여 그 정당성과 생활력이 뚜렷이 확증되였다.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적지 않은 나라들이 조선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조선은 세계 여러 나라와 경제문화적교류와 협조를 확대발전시키고 자주와 정의를 지향하는 진보적인민들과의 뉴대와 련대성을 강화하여 자주, 평화, 친선에로 향한 국제적흐름을 고무추동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인류와 사회의 진보에 공헌한 력사적위인의 초상은 마땅히 세상에 널리 알려져야 하며 그가 쌓은 업적은 후세에 길이 전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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